철도 위의 영웅, 김재현 기관사 이야기

철도 위의 영웅, 김재현 기관사 이야기
대전역 인근 철길을 따라가면 한국전쟁의 깊은 흔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전역 동광장에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와 국가철도공단 본사가 위치한 28층 철도기관 공동사옥, 이른바 철도트윈 타워 앞 광장에 세 명의 철도인 청동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동상은 단순한 추모 조형물이 아니라, 6·25전쟁 당시 전선에서 군수물자와 인력을 실어 나르며 전시 철도수송의 최전선에 섰던 철도인들의 희생을 기리는 역사적 표지입니다.
특히 고(故) 김재현 기관사와 현재영, 황남호 부기관사는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국가를 지탱한 철도인의 상징적 존재입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삶은 6·25전쟁 당시 철도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전쟁 수행의 핵심 인프라였음을 보여줍니다. 국군과 유엔군 병력 이동, 군수물자 수송, 피란민 이송 등 모든 전쟁 지원 활동이 철도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1950년 여름, 전선이 남하하면서 철도망은 끊임없이 파괴 위협을 받았고, 각 역과 선로는 적의 최우선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국가기록포털에 따르면, 교통부 비상동원령에 따라 19,300여 명의 철도 종사자가 위험한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들은 비무장 민간인이었지만, 국가 붕괴를 막기 위한 결단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 충북 영동역에서 군수물자 후송 작전에 투입됐으며, 1950년 7월 19일 대전역에 남겨진 군수물자 10량을 후송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대전은 북한군의 점령 직전으로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김 기관사는 현재영, 황남호 부기관사와 미군 결사대원 30여 명과 함께 적진 한가운데로 열차를 운행했습니다.
이 임무는 단순한 열차 운전이 아니라, 적의 요충지를 뚫고 사람과 물자를 안전하게 수송하는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세천역과 세천터널을 지날 때 적의 집중 포화를 받았고, 미군 결사대원 대부분이 전사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습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다가 가슴에 8발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순직했습니다. 현재영 부기관사도 팔에 관통상을 입었으며, 황남호 부기관사가 기관차를 제어해 옥천역으로 퇴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영웅담을 넘어 철도인들의 집단적 헌신을 보여줍니다. 전시 철도수송은 기관차 운전, 연결, 물자 수송, 호송, 정비 등 수많은 철도 노동자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만 가능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287명의 철도인이 목숨을 잃은 사실은 철도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작동했는지를 증명합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197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고, 1983년에는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되어 국가 호국의 역사에 헌액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특별공로훈장을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그의 희생이 인정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국가보훈부가 김 기관사를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동료 현재영 부기관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황남호 부기관사는 국립임실호국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전 곳곳에는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962년 세천역 철로변에 세워진 순직비와 2015년 대전역 동광장 철도트윈 타워 앞에 건립된 철도영웅 동상은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삶을 넘어 전쟁 속에서 국가를 지탱한 철도인들의 결단과 헌신을 되새기게 합니다. 대전역 앞 동상은 바쁜 시민들에게 “철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나라를 지킨 길”임을 조용히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붉은 선로 위에서 멈추지 않았던 기관차의 굉음은 김재현 기관사와 동료들의 이름과 함께 한국 철도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전역 대전1호선
대전광역시 동구 중앙로 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