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이 된 대전의 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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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이 된 대전의 가을밤

말 한마디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웃음과 감동을 전한 마임예술이 대전 중구의 가을밤을 채웠다. ‘2026 제18회 대전ART마임페스티벌’이 2026년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대전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사 본관에서 열렸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대전ART마임페스티벌은 2009년 민간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지역 마임예술축제다.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와 대전ART마임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역사적인 건축물의 현관과 복도, 계단, 실내 공간을 공연 무대로 활용했다.

옛 충남도청사가 공연장으로

공연이 펼쳐진 옛 충남도청사 본관은 오랜 시간 대전의 역사를 품어온 건축물이다. 익숙한 건물의 입구와 계단은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평소와 다른 무대로 바뀌었다. 별도의 대형 무대장치보다 건축물 자체의 구조와 분위기를 살린 공간 구성이 마임의 동작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냈다.

본관 입구에는 포토존이 마련됐으며, 최희 대전ART마임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의 감사 인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현관과 계단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작품의 흐름을 지켜봤다. 공연자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건물의 공간도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졌다.

먹빛과 몸짓이 만난 붓 퍼포먼스

축제의 문은 붓 퍼포먼스가 열었다. 세종손글씨연구소 김성장 회장을 포함한 세 명의 참여자가 대형 면 캔버스에 차례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캔버스에는 ‘마임대전 몸으로 표현된 마음’과 ‘햇살이 눈부신 계절 가을의 언어 마임으로’라는 문구가 담겼다.

옛 충남도청사 현관에서는 커다란 화선지 위에 붓글씨를 쓰는 움직임과 공연자의 몸짓이 어우러졌다. 긴 화선지에 먹물이 번질 때마다 관객들의 시선도 붓끝을 따라 움직였다. 힘차게 뻗는 동작과 느리고 섬세한 움직임이 교차하면서 말 없이도 장면의 분위기가 전달됐다.

긴 대나무 장대로 그린 긴장

이어 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 김은미 배우가 ‘보이지 않는 제목’을 선보였다. 서예 작품이 놓인 캔버스를 레드카펫처럼 활용한 배우는 머리에 긴 대나무 장대를 얹은 채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바닥을 구르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동작을 거쳐 천천히 본관 현관 안으로 이동했다.

공연은 본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도 계속됐다. 배우는 한지로 만든 듯한 가면을 활용해 장면을 전개했고, 관객들은 움직임과 가면이 만들어내는 정서에 집중했다. 익숙한 계단은 배우의 절제된 동작과 만나 새로운 공연 공간으로 변했다. 현장은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들로 한동안 고요해졌다.

몸으로 형상화한 목수의 노동

호모루덴스 마임컴퍼니는 ‘목수’를 무대에 올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남긍호 교수는 얼굴을 가려 표정을 감추고 의상을 최소화한 채 신체 움직임만으로 목수의 노동을 표현했다.

배우 앞에는 실제 연장이나 작업대가 놓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의 긴장과 균형, 저항감을 활용해 보이지 않는 도구를 다루고 작업을 이어가는 목수의 동작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얼굴 표정보다 신체 움직임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구성된 작품이었다.

이 같은 표현 방식은 프랑스 마임예술가 에티엔 드크루가 발전시킨 신체마임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실제 사물이 없는 공간에서도 배우의 몸은 연장과 작업대, 노동의 무게를 떠올리게 했다. 말과 도구를 덜어낸 자리에 신체의 긴장과 움직임이 하나의 언어로 자리했다.

박종호 기타리스트의 현장 연주도 공연의 흐름을 뒷받침했다. 언어가 배제된 마임에서 음악과 효과음은 장면의 속도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다. 기타 연주는 각 퍼포먼스의 움직임에 맞춰 이어지며 공간의 긴장과 감정을 더했다.

관객도 함께 만든 마임 무대

공연 중간에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깜짝 마임이 펼쳐졌다. 평소 마임에 관심을 두고 배우고 있는 스무 살 김윤지 씨가 우산을 들고 무대에 올라 짧은 공연을 선보였다.

전문 배우의 작품 사이에 시민의 참여 무대가 마련되면서 현장에는 색다른 활기가 더해졌다. 이 장면은 마임이 전문 예술가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 누구나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생활예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울림

달란트마을 최경식 배우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공연했다. 미국 아동문학가 쉘 실버스틴이 1964년에 쓴 동화를 바탕으로,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몸짓과 표정으로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는 나무의 이야기가 내레이션과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펼쳐졌다. 배우는 다양한 표정과 동작으로 이야기 속 장면과 감정을 풀어냈다. 익숙한 동화는 마임이라는 형식을 만나 말로 읽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관객 앞에 놓였다.

마임은 배우가 모든 의미를 설명하는 대신 관객이 움직임을 보고 장면을 상상하도록 이끄는 예술이다. 배우의 손짓과 발걸음, 몸의 방향과 표정이 차례로 의미를 만들면서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이야기의 감정이 이어졌다.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 체조

공연 마지막에는 관객 모두가 함께하는 마임체조가 진행됐다. 최경식 배우가 동작을 안내하자 관객들은 손을 움직이고 몸짓을 따라 했다.

처음에는 다소 조심스럽게 동작을 시작한 관객들도 공연자의 안내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객석 곳곳에 웃음이 번졌고,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이 공연의 한 부분으로 들어왔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동작을 함께하는 동안 공연장 안의 경계도 한층 가까워졌다.

대전역에서 시작된 특별한 마임여행

본 공연에 앞서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대전역에서는 ‘코레일과 함께하는 특별한 마임여행’이 진행됐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뿐 아니라 대전역을 오가는 시민과 철도 이용객도 마임을 접할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대전ART마임페스티벌은 그동안 공연장뿐 아니라 거리와 광장, 원도심의 여러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며 시민의 일상 가까이에서 마임을 소개해 왔다. 대전역 프로그램과 옛 충남도청사 본공연 역시 일상적인 이동 공간과 역사적인 건축물을 예술 무대로 확장한 구성으로 이어졌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어진 열여덟 번째 축제

올해 축제는 지난해부터 공공예산 지원이 중단된 여건 속에서 개최됐다. 해마다 이틀 동안 진행됐던 일정은 하루로 줄었다. 행사 규모는 축소됐지만 붓 퍼포먼스와 신체마임, 동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시민 참여 공연과 마임체조까지 다양한 무대가 한자리에서 이어졌다.

18년 동안 지역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축제를 이어왔다는 점도 이번 행사의 중요한 배경이다. 마임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꾸준히 작품을 소개하고, 원도심의 거리와 건축물을 무대로 활용해 왔다는 점에서 축제의 흐름이 이어졌다.

원도심의 역사와 예술이 만나다

대전 중구 원도심의 대흥동과 은행동, 선화동 일대에서는 미술 전시와 공연, 거리축제, 생활문화행사 등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 문화공간이 모여 있는 지역의 특성은 여러 형태의 예술을 담아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번 대전ART마임페스티벌은 역사적인 건축물을 공연장으로 활용했다. 현관과 복도, 계단이 작품의 움직임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으로 바뀌면서 옛 공간의 문화적 쓰임도 새롭게 드러났다. 대형 행사장이나 화려한 무대장치 없이도 예술가의 몸짓과 시민의 호응으로 공연이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무대였다.

열여덟 번째 축제의 가을밤에는 말보다 몸짓이 앞섰고, 관객들은 그 움직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먹빛이 번지는 붓 퍼포먼스부터 노동을 형상화한 신체마임, 동화의 감정을 옮긴 공연과 시민 참여 체조까지, 서로 다른 작품들은 옛 충남도청사 곳곳을 하나의 공연장으로 연결했다.

공연 장소

장소대전근현대사전시관 옛 충남도청사 본관
위치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85
행사명2026 제18회 대전ART마임페스티벌
개최 일시2026년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진행 시간약 1시간 30분
주최현대마임연구소 제스튀스, 대전ART마임페스티벌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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