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에 숨겨진 광복의 역사, 을유해방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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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에 숨겨진 광복의 역사, 을유해방기념비

대전 보문산에 자리한 을유해방기념비

대전 중구 보문산을 자주 찾는 시민이라면 산책길 옆 높은 계단 위에 자리한 큰 비석을 한 번쯤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석은 산책로와 통행로에서 바로 보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어 그동안 많은 시민이 이곳에 특별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비석의 이름은 ‘대전 을유해방기념비’로, 광복의 기쁨을 대전시민 스스로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입니다. 올해로 건립 80주년을 맞았으며, 대전광역시 등록문화유산으로도 공식 등록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광복절 맞아 열린 기념행사

지난 8월 15일 제81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보문산 을유해방기념비 앞에서는 ‘을유해방기념비와 함께하는 광복의 기억’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에는 대전시와 중구 관계자, 지역 문화유산 단체 회원, 국가유산지킴이, 스토리투어 참가자와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행사는 문화유산 등록 경과 보고와 기념사, 서예 퍼포먼스, 새로 설치된 안내판 제막식, 기념비 해설, 환경정화 활동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시민이 세운 광복 1주년 기념비

을유해방기념비의 역사는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후, 대전시민들이 해방의 기쁨을 오래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고자 뜻을 모은 데서 시작됩니다. 광복 1주년인 1946년 8월 15일, 당시 대전부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대전역 광장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 기념비는 관 주도의 조성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성금으로 건립된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당시 대전역 광장은 대전의 대표적인 관문이자 시민들이 모이는 중심 공간이었기에 광복의 기쁨을 모두와 나누고 기억하기 위한 장소로 선택되었습니다.

기념비의 이동과 보존

기념비와 함께 두 개의 해태상도 있었으나 해태상은 1957년 서울 현충원에 기증되었고, 기념비는 대전역 광장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워졌다가 1971년 현재의 보문산 자리로 이전되었습니다. 1987년 보수공사 때는 비석 좌우 측면에 중수 기록이 추가되었습니다.

한글로 새긴 광복의 기쁨

기념비 정면에는 ‘을유팔월십오일기념’이라는 아홉 글자가 힘차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을유년 8월 15일을 기념한다’는 뜻으로, 광복 직후 세워진 기념비 중 한문 대신 순한글로 비문을 새긴 점이 큰 의미를 갖습니다.

비문은 당시 대전에서 활동한 서예가 동초 이기복 선생이 썼으며,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써 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완성되었습니다.

대전부민의 기록과 문화유산 가치

비석 뒷면에는 당시 행정명칭인 ‘대전부민’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어 1935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된 행정명칭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전국 각지에 세워진 해방 관련 기념물과 비교해도 규모가 크고 전통적인 비석 형태가 잘 보존된 점이 특징입니다.

이 기념비는 단순한 비석이 아니라 광복 직후 대전시민의 마음과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대전광역시 등록문화유산 지정

을유해방기념비는 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조사와 전문가 자문, 재조사, 등록 예고를 거쳐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최종 등록이 결정되었으며, 8월 7일 등록 고시가 완료되었습니다.

등록을 계기로 기념비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새로 설치되었고, 주변 숲을 밝히는 경관조명도 마련되었습니다. 광복절에는 안내판 제막식과 기념식이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중구청장의 시민 중심 문화유산 관점

행사에 참석한 김제선 대전 중구청장은 을유해방기념비의 가장 큰 특징으로 한글 사용과 시민 참여를 꼽았습니다. 당시 한문 중심 사회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새긴 점과 시민들이 직접 성금을 모아 세운 점이 특별하다는 설명입니다.

기념비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자치구 소유가 아닌 대전시민 모두의 문화유산으로 바라봐야 하며, 시민이 원하는 장소에서 광복의 의미를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예 퍼포먼스와 안내판 제막식

행사에서는 송인도 서예가가 대형 화선지에 ‘을유팔월십오일기념’ 글씨를 다시 쓰는 서예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80년 전 광복 1주년을 기념하며 비석에 새긴 글씨를 오늘날 시민 앞에서 붓으로 되살린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퍼포먼스 후에는 새 안내판 제막식이 이어져 참석자들이 함께 제막을 진행하며 기념비의 역사와 의미를 알렸습니다. 이후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의 해설과 함께 80년 전 대전시민의 광복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환경정화 활동과 시민 참여

행사 마지막에는 국가유산지킴이 대전세종 권역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과 함께 기념비 주변을 청소하고 정비하는 환경정화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대전시에서는 살수차를 지원해 애벌 물청소를 도왔습니다.

이처럼 기념식을 넘어 시민들이 직접 문화유산을 돌보고 지키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보문산 방문 시 꼭 들러야 할 문화유산

보문산을 찾는 이들은 대전목재문화체험장 아래 주차장 바로 위 산책로 가장자리에 있는 계단 위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을유해방기념비는 화려한 관광명소나 거대한 전시관은 아니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공간에 서 있습니다.

그 안에는 광복을 맞은 대전시민의 기쁨과 감격,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세운 공동체 정신, 그리고 우리말과 글로 광복을 기억하려 했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보문산 산책이나 등산 중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안내판을 읽고 계단을 올라 ‘을유팔월십오일기념’ 글씨를 직접 바라보며 80년 전 대전시민들이 남긴 광복의 흔적을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대전시민이 함께 남긴 광복의 기억을 마음에 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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