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군복이 마주 선 6월 26일

제17회 대전국제소극장연극축제의 첫 무대가 대전 드림아트홀에서 열렸다. 개막작은 극단 아라리의 연극 6월 26일이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말 강제징집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소속과 운명이 바뀐 두 인물의 삶을 무대 위에 펼쳐냈다.
이번 축제는 2026년 9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13일 동안 대전의 여러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튀르키예 등에서 온 12개 팀이 참여하며, 모두 23회의 공연을 선보이는 일정이다. 드림아트홀과 마당 소극장, 소극장 고도, 우금치 전용극장 등 대전의 문화 공간들이 축제 무대가 된다.
청년 관객이 기다린 개막 무대
공연 전 드림아트홀 입구에는 관람을 기다리는 청년들이 길게 줄을 섰다. 개막작을 앞둔 관객들의 기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연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됐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까운 소극장 특유의 구조는 배우의 움직임과 호흡을 세밀하게 전달할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공연 시작을 앞둔 무대는 간결했다. 네모난 무대 위에는 신발장 크기의 직사각형 상자 두 개가 놓였고, 그 뒤에는 크기가 다른 상자들이 2층으로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비닐이 깔렸으며, 여러 스피커가 무대 곳곳에 세워지거나 눕혀져 있었다. 정면에는 작품 제목인 6월 26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자리했다.
장식을 최소화한 공간은 배우의 몸짓과 소리, 조명에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조명이 꺼지면서 객석의 움직임도 잦아들었고, 제한된 무대 장치가 어떤 장소와 시간으로 바뀔지 관심이 모였다.
역사 속에서 뒤바뀐 이름과 소속
조명이 다시 켜지자 군복을 입은 두 남자 배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빔프로젝터에는 1950년 6월 26일이라는 날짜가 비쳤다. 무대 위 두 인물은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로 보이는 설정 속에서 자신들이 지나온 시간을 되짚기 시작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말 강제징집에서 출발한다. 두 인물은 일본군과 소련군, 독일군, 미군을 거치며 병사와 포로의 경계를 오간다.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이름과 국적, 소속이 계속 달라지는 과정은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에게 군복은 신념을 드러내는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입어야 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 다른 군복으로 바꿔 입어야 했던 삶의 흔적이다. 두 인물은 낯선 전장을 떠돌며 생존을 이어가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고향 역시 평온한 공간은 아니었다.
고향에서 서로에게 겨눈 총구
긴 방황을 마치고 1950년 6월 고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진영의 군복을 입은 채 다시 만난다. 한 사람은 북한군, 다른 한 사람은 남한군이 돼 있었다. 같은 시간을 견뎌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 장면은 한국전쟁이 개인과 공동체에 남긴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두 사람의 대립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강요한 소속에서 비롯된다. 반복해서 바뀐 군복과 국적은 두 인물의 삶을 흔들었고, 끝내 고향에서조차 서로를 적으로 마주하게 했다. 작품은 전쟁의 거대한 흐름을 나열하기보다 두 인물의 관계와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드러냈다.
사자의 질문은 배우의 직접적인 목소리 대신 음향과 조명 효과로 표현됐다.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찾아야 했던 절박한 상황도 긴 설명보다 배우들의 몸짓으로 전달됐다. 가까운 객석에서는 인물들의 긴장과 움직임, 전쟁 속에서 누적된 피로가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 배우가 채운 90분
공연 시간 90분 동안 무대는 두 명의 배우가 이끌었다. 두 배우는 많은 대사와 강도 높은 움직임을 소화하며 여러 시대와 전장을 오갔다. 공연이 이어질수록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은 작품 속 인물들이 견뎌온 고된 삶과 배우들의 집중력을 함께 보여줬다.
무대 초반부터 배치됐던 상자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기능을 맡았다. 상자 안에서는 총과 가방, 추위를 피하기 위한 담요가 나왔다. 단순한 수납 도구처럼 보였던 상자는 과거의 기억을 꺼내는 장치이자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무대 장치로 활용됐다.
제한된 공간과 소품은 오히려 관객의 상상을 넓혔다. 배우들이 상자를 열고 닫거나 위치를 바꿀 때마다 무대는 전장과 이동 경로, 추위를 견디는 장소로 전환됐다. 소극장의 가까운 거리는 이러한 변화를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춘천대첩으로 전한 전쟁의 아픔
공연이 끝난 뒤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엄태훈 연출가는 작품이 한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6·25전쟁 전체를 직접적이고 길게 설명하기보다 춘천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연출가는 작품에 분명한 의도가 있지만 관객이 각자의 경험과 시선에 따라 자유롭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말도 전했다. 이에 따라 공연은 하나의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무대 위 두 인물의 삶을 통해 전쟁과 인간의 관계를 각자 생각하도록 구성됐다.
대전 소극장에 오른 국제 축제
극단 아라리의 6월 26일을 시작으로 제17회 대전국제소극장연극축제의 막이 올랐다. 대전 연극계는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네 차례 대상을 받은 이력을 갖고 있다. 이번 축제는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마련됐다.
배우와 관객이 가까운 거리에서 눈빛과 호흡을 나누는 것은 소극장 공연의 뚜렷한 특징이다. 대형 무대와 달리 작은 움직임과 짧은 숨소리까지 객석에 전달되며, 관객의 반응도 배우에게 곧바로 닿는다. 이번 개막 공연에서도 이러한 소극장의 밀도가 역사 속 두 인물의 비극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대전 곳곳의 소극장을 연결한 이번 축제는 국내외 12개 팀의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무대 언어와 이야기를 선보인다. 총 23회의 공연이 예정된 만큼 작품별 주제와 연출 방식, 배우들의 표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축제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다.
공연 장소 정보
| 시설명 | 드림아트홀 |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서로 2 지하 1층 |
| 개막 작품 | 극단 아라리 6월 26일 |
| 공연 시간 | 90분 |
| 축제 기간 | 2026년 9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
| 축제 규모 | 12개 팀 23회 공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