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경문으로 이은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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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경문으로 이은 70년

대전과 충청 지역에서 발달한 전통 무속 의례인 ‘대전의 앉은굿’이 일흔 번째 공개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만났다. 2026년 10월 25일 대전 중구 서대전시민공원에는 북과 징,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법사들의 독경이 이어지는 동안 시민들은 굿판 주변에 모여 지역 무형유산의 전승 현장을 지켜봤다.

사단법인 대전문화유산연합회와 한국전통 대전앉은굿보존회가 마련한 행사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됐다. 대전 시민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고, 오랜 세월 이어진 지역 전통문화를 공개하는 자리였다.

서대전시민공원에 펼쳐진 굿판

행사장에는 오색 종이로 만든 의례 장식인 설경이 설치됐고, 고사상에는 여러 제물이 차려졌다. 북과 꽹과리 등 전통 악기가 놓인 굿판 주변으로 관람객들이 모여들자 법사들은 경문을 읽으며 의례를 이어갔다.

가을 국화가 피어난 공원 안에서 독경과 전통 장단이 어우러졌다. 형형색색의 의례 도구와 장식, 고사상, 전통 복장을 갖춘 법사들의 움직임이 한 공간에 펼쳐지면서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지역 전통문화의 모습을 보여줬다.

행사는 농악과 고축, 국민의례, 내빈 소개와 시상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회심곡과 고장 시연, 부정경과 신명축원, 법사축원, 성주가림, 조상길닦이, 신장대감놀이, 작두거리 등 앉은굿을 구성하는 여러 절차가 차례로 공개됐다.

삶과 부모의 은혜를 돌아본 회심곡

전숙자 앉은굿 이수자는 회심곡을 선보였다. 회심곡은 삶과 죽음, 부모의 은혜와 인간의 도리를 돌아보게 하는 전통 노래다. 북 장단과 노랫가락이 공원에 이어지는 동안 관람객들은 자리를 지키며 공연을 바라봤다.

뒤이어 진행된 독경과 의례에는 사람들의 평안과 복을 기원하고 조상을 위로하는 뜻이 담겼다. 법사들은 장단을 맞추며 경문을 읽었고, 각 절차에 맞춰 의례 도구를 사용했다. 관람객들은 굿판 가까이에서 그 과정을 살펴봤다.

방성구 보유자가 이끄는 전승 현장

이번 공개행사의 중심에는 대전무형유산 앉은굿 보유자인 방성구 법사가 있었다. 방성구 보유자는 17세 때 고 신석봉 보유자를 만나 무속의 길에 들어선 뒤 50년 넘게 앉은굿의 전통을 이어왔다.

방성구 보유자는 2000년 전승교육사로 인정받았으며, 2025년 1월 대전무형유산 앉은굿 보유자로 인정됐다. 오랜 기간 앉은굿 전승을 이끌었던 고 신석봉 보유자의 뒤를 이어 전승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됐다.

이날 행사에는 방성구 보유자와 여러 이수자가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고장 시연과 신명축원, 성주가림, 조상길닦이, 신장대감놀이를 비롯해 앉은굿의 주요 절차를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보유자와 이수자가 한자리에서 의례를 이어가는 모습은 세대를 거쳐 전해진 전승의 과정을 현장에서 보여줬다.

오방기로 풀어낸 기원과 소원

시민들의 시선이 모인 순서 가운데 하나는 오방기를 이용한 의례였다. 법사가 다섯 가지 색의 깃발을 펼치거나 뽑으며 길흉과 소원을 풀이하는 전통 방식이다.

안화욱 앉은굿 전수장학생도 오방색 깃발을 활용한 축원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법사의 손에서 깃발이 펼쳐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일부는 의례에 직접 참여했다. 여러 사람이 굿판 주변에 모이면서 공개행사장은 한층 활기를 띠었다.

방성구 보유자와 최완호 법사가 함께한 성주가림을 비롯해 각 의례는 독경과 악기 장단, 몸짓과 무구가 맞물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은 사진을 촬영하거나 절차를 주의 깊게 바라보며 지역 무형유산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했다.

긴장감 속에서 이어진 작두거리

행사 후반에는 앉은굿 이수자인 송재창 법사가 작두거리를 선보였다. 작두거리는 날이 위로 향하도록 설치한 작두 위에 올라 의례를 진행하는 전통 굿의 한 절차다.

송재창 이수자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복장을 갖추고 제사상 앞에서 의례를 진행한 뒤 높은 단에 설치된 작두 위에 올랐다. 맨발로 날카로운 작두 위에 선 순간,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참가자들은 곁에서 장단을 맞추고 의례 진행을 도왔다. 관람객들은 놀란 표정으로 작두거리를 지켜보거나 휴대전화로 현장을 촬영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묘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전통 무속 의례의 일부로 전해져 온 절차라는 점에서 공개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음식으로 이어진 공동체의 정

공개행사에서는 시민을 위한 음식 나눔도 진행됐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떡국과 편육, 떡 등이 제공됐으며, 모든 의례가 끝난 뒤에는 제사상에 올렸던 과일과 떡도 관람객들에게 고루 나눠졌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은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고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 행사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도 시민들은 같은 공간에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의 한 장면을 함께했다.

공개행사의 음식 나눔은 굿이 의례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문화였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공연을 관람한 뒤 음식을 나누는 시민들의 모습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진 공동체 풍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대전과 충청의 독특한 앉은굿

앉은굿은 법사가 서서 진행하는 선굿과 달리, 주로 앉아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경문을 읽는 독경 중심의 무속 의례다. 특히 대전과 충청 지역에서 발달한 민속문화로, 불교와 도교 등 여러 종교적 요소가 오랜 세월 어우러지며 현재의 형태로 전승됐다.

독경과 장단, 의례 절차, 무구와 장식, 참여 방식은 세대를 거쳐 이어진 문화적 자산이다. 굿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 예술과 공동체 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대전의 앉은굿’은 역사성과 지역적 특성을 인정받아 1994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현재 대전무형유산으로 보존·전승되고 있다. 대전과 충청 지역의 고유한 민속문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지역 무형유산이다.

신앙을 넘어 살펴보는 문화적 가치

앉은굿이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신앙적 효험이 아니라 전통 의례와 독경, 음악, 무구, 장식, 공동체 문화가 지닌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다. 이를 단순히 특정 종교의 의식이나 미신으로 한정해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대전의 무형유산은 대전문화재단의 관리와 지원 아래 공개행사와 전승교육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보유자와 이수자, 전수장학생이 참여하는 공개행사는 오랫동안 이어진 전통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전승되고 있는지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특정 신앙을 권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역의 전통문화와 그 전승 과정을 공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시민들은 독경과 장단, 의례 도구와 복식, 여러 절차를 한자리에서 지켜보며 대전무형유산의 구성과 특징을 확인했다.

일흔 번째 만남이 남긴 의미

올해 70회를 맞은 대전의 앉은굿 공개행사는 지역 전통문화가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보유자와 전승자들의 활동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방성구 보유자를 중심으로 이수자와 전수장학생들이 참여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고, 시민들은 굿판 가까이에서 전승의 현장을 지켜봤다.

북과 꽹과리의 장단, 법사들의 독경, 오방기와 설경을 비롯한 의례 도구, 작두거리와 음식 나눔은 앉은굿이 지닌 여러 문화적 요소를 한자리에서 드러냈다.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의례의 의미와 함께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도 이어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지원, 보유자와 전승자들의 노력, 시민들의 관심이 맞물릴 때 지역 무형유산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일흔 번째 공개행사는 대전과 충청의 독특한 전통문화가 시민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장소 정보

행사 장소서대전시민공원
소재지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 1-40
행사 일시2026년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행사 주최·마련사단법인 대전문화유산연합회, 한국전통 대전앉은굿보존회
주요 내용농악, 고축, 회심곡, 고장 시연, 부정경, 신명축원, 법사축원, 성주가림, 조상길닦이, 신장대감놀이, 작두거리, 음식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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