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설계하는 서구

정책의 수보다 주민 참여가 중요하다
지방자치가 성숙할수록 지역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추진한 정책의 수나 확보한 예산의 규모만으로는 지방자치의 수준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주민이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얼마나 깊이 참여하고, 생활 속 문제를 직접 찾아 해결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선 9기 비전을 구체화해야 하는 대전 서구에는 주민 참여를 실질적인 정책으로 연결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주민이 행정의 결정을 전달받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 문제의 발견부터 해결책 검증까지 함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모델로 제시된 것이 리빙랩이다.
생활 현장에서 답을 찾는 리빙랩
리빙랩은 주민이 살아가는 현장을 실험과 검증의 공간으로 삼는 참여형 혁신 모델이다. 우리 동네 현장 실험실이라는 표현처럼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정해 제공하는 기존 방식과 차이가 있다.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한 팀을 이뤄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기술과 아이디어를 결합한다. 제안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해결책을 시험하며 효과와 한계를 확인해 나간다는 점도 특징이다. 주민은 정책 수혜자에 머무르지 않고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검증하는 주체로 참여한다.
이러한 방식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도시 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현실이 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주차난, 골목상권 위축은 지역과 생활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급자 중심의 획일적인 행정 서비스만으로는 세밀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양한 생활권이 실증 무대
대전 서구는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생활권이 공존하고 있어 리빙랩을 적용할 여건을 갖춘 지역으로 제시됐다. 둔산권에서는 도심 정비와 공공 공간의 재구성을 실험할 수 있고, 원도심에서는 골목길 안전과 생활 돌봄을 중심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약해진 공동체 관계를 회복하는 방안을 주민과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생활권마다 문제의 성격과 주민의 요구가 다른 만큼, 현장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직접 해결책을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지역 대학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도 서구의 기반으로 언급됐다. 주민이 제시한 아이디어에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을 연결하면 생활 속 제안을 실제로 시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주민의 경험, 전문가의 검증, 행정의 지원을 하나의 과정으로 묶는 것이 리빙랩의 핵심 구조다.
단발성 사업을 넘어 제도로
민선 9기 대전 서구에 필요한 과제로는 개별 사업을 흩어 추진하는 수준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서구형 리빙랩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주민의 생각이 일회성 행사나 단순 민원으로 끝나지 않고 정책과 제도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 아이디어를 접수한 뒤 행정 검토와 예산 연계, 전문가 검증, 현장 실증을 거쳐 제도화할 수 있는 원스톱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각 단계가 분리되면 주민 제안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행과 검증까지 연결되는 구조가 중요하다.
현장 실험에서는 모든 시도가 곧바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작은 실패에만 무게를 두기보다 결과를 분석하고 다음 시도에 반영할 수 있는 행정의 유연성도 필요한 요소로 꼽혔다. 리빙랩은 완성된 답을 주민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주민 연구자와 혁신 조력자
2026년 11월은 한 해의 사업을 정리하는 시기인 동시에 다음 해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때다. 민선 9기 서구가 스마트 포용 도시로 도약하려면 주민 참여를 구호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구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네의 문제를 살피고 해결책을 시험하는 주민 연구자가 되고, 서구청은 그 과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혁신의 조력자가 되는 구조가 핵심이다. 주민은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전문가와 행정은 이를 검증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리빙랩의 성패는 주민과 행정이 얼마나 꾸준히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아이디어로 모이고, 아이디어가 기술과 행정 지원을 만나며, 검증을 통과한 해결책이 제도로 정착할 때 지방자치의 성과도 구체화될 수 있다. 대전 서구가 주민 주도의 현장 실험을 통해 따뜻하고 혁신적인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