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동 아리아갤러리서 만나는 고요한 부재

Last Updated :
은행동 아리아갤러리서 만나는 고요한 부재

은행동 아리아갤러리서 만나는 고요한 부재

대전 중구 은행동의 중심, 성심당 문화거리 인근에 위치한 아리아갤러리에서 오승언 작가의 개인전 《조금이라도, 찰나라도, 더》가 8월 25일부터 9월 6일까지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기억과 상실, 그리고 부재의 감각을 회화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한 자리입니다.

성심당 본점 바로 뒤편에 자리한 아리아갤러리는 대전의 번화가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 내부는 고요함과 여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전시장 안에는 빈 의자와 어두운 통로, 아무도 없는 방과 넓은 여백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오승언 작가의 작품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재현하기보다는, 빈 공간과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관람객 각자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특징을 지닙니다. 특히 빈자리와 어둠으로 표현된 부재의 모습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화면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듭니다. 빈 의자, 텅 빈 방, 불이 꺼진 통로 등은 특별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지만, 오히려 그 부재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전시 제목인 《조금이라도, 찰나라도, 더》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오승언 작가에게 회화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장치라기보다 희미해지는 기억과 감정을 오래 바라보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인 상실에서 출발한 작업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재라는 상태 자체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작품의 형식 또한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오승언 작가는 화면을 가득 채우기보다 넓은 색면과 여백을 적극적으로 남겨 작은 형상과 커다란 빈 공간이 긴장 관계를 이루도록 합니다. 관람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머무르며, 여백은 단순히 비워둔 공간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기억이 머무는 장소가 됩니다.

색채 표현도 인상적입니다. 작가는 물감을 한 번에 두껍게 올리기보다 얇은 층을 여러 차례 겹쳐 화면을 완성합니다. 이 겹겹이 쌓인 색은 가까이에서 볼수록 미묘한 차이와 깊이를 드러내며, 이는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고 겹쳐지는 기억의 특성과 닮아 있습니다.

전시장 구성은 작품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며, 검은 천장과 콘크리트 바닥, 흰 벽으로 이루어진 아리아갤러리 공간에 집중된 조명이 작품 속 빛과 어둠을 실제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관람객은 멀리서 전체 구조를 감상한 뒤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 색의 층과 작은 형상을 살펴보며 작품을 다층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대표작인 ‘멍하니’에서는 넓은 유리창과 텅 빈 바닥, 그 안의 작은 인물이 거대한 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빈 자리’에서는 테이블과 의자, 벽을 가르는 빛이 고요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적막’과 ‘짐작’ 연작에서는 계단, 문, 벽, 통로 등 건축적 요소가 절제된 색과 형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장면 앞에서 관람객 각자가 무엇을 떠올리는지 살펴보는 경험을 권장합니다.

오승언 작가는 한남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25년 이응노미술관 지역작가 프로젝트 ‘아트랩 플러스’에 선정되어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와 2026년 명륜동 작업실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성심당 방문 시 아리아갤러리까지 발걸음을 옮기면, 북적이는 도심 속에서 느린 시간과 고요한 부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심당과 아리아갤러리를 지나면 대흥낭만거리 골목형상점가로 이어져, 빠르게 소비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한 장의 그림 앞에서 비어 있는 자리를 오래 바라보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전시는 12시부터 19시까지 운영되며,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입니다. 작품 관련 문의는 아리아갤러리로 하면 됩니다.

은행동 아리아갤러리서 만나는 고요한 부재
은행동 아리아갤러리서 만나는 고요한 부재
은행동 아리아갤러리서 만나는 고요한 부재 | 대전진 : https://daejeonzine.com/5957
서울진 부산진 경기진 인천진 대구진 제주진 울산진 강원진 세종진 대전진 전북진 경남진 광주진 충남진 전남진 충북진 경북진 찐잡 모두진
대전진 © daejeonzine.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