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메론풍경

대전 중구 원도심의 골목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성심당거리 뒤편 대흥동에 있는 문화공간주차에서는 한국화가 정용민의 여덟 번째 개인전 ‘메론풍경’이 열린다.
전시는 2026년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어진다. 산과 바다, 꽃과 사람, 여행지에서 마주한 장면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한국화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연두색부터 짙은 녹색까지 폭넓은 초록빛이 펼쳐져 편안하면서도 싱그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멜론 없이 완성한 메론풍경
‘메론풍경’이라는 제목만 보면 달콤한 과일 멜론을 소재로 삼은 전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장에 멜론을 직접 그린 작품은 없다. 제목의 중심은 과일의 형태가 아니라 멜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단계의 초록색이다.
정용민 작가는 평소 초록색을 좋아하며 작품에도 다양한 녹색을 즐겨 사용한다. 멜론의 연한 과육에서 짙은 껍질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초록빛에서 영감을 얻어 이번 전시의 이름을 ‘메론풍경’으로 정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밝은 연두색과 깊은 녹색이 작품마다 서로 다른 표정으로 이어진다. 같은 초록 계열이라도 밝기와 농도에 따라 풍경의 온도와 인상이 달라진다. 여러 초록빛으로 구성된 화면은 산과 바다, 꽃과 사람의 모습을 하나의 전시 흐름으로 연결한다.
전통 한지 위에 쌓은 풍경
정용민 작가는 목원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전통 산수화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인물과 일상으로 표현 범위를 넓혀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통적인 한국화 재료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화면을 구성한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서 눈여겨볼 요소는 그림이 놓이는 바탕이다. 작가는 전통 한지인 순지에 직접 무늬를 만든 다음 그 위에 풍경과 인물을 겹쳐 그린다. 완성된 장면만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화면 아래에 쌓인 무늬와 표현을 함께 살펴보면 작품의 구성 방식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바탕에는 수많은 사람의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표현돼 있다. 걷는 듯한 모습과 춤추는 듯한 몸짓이 서로 겹치고 이어지면서 구체적인 인물 표현인 동시에 하나의 추상적인 무늬처럼 보인다. 반복된 움직임은 작품의 표면에 리듬을 만들고, 그 위에 놓인 풍경과 인물은 여러 겹의 장면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물감이 종이에 스며드는 부분과 표면에 남는 부분의 차이를 활용해 깊이와 질감을 표현한다. 순지의 성질과 물감의 흔적을 함께 드러내는 방식이다. 전통 한국화의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화면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이 나타난다.
‘서책 낮’과 ‘서책 밤’에서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의 인상을 살펴볼 수 있다. 작품의 바탕과 물감, 겹쳐진 형상이 어우러지며 각기 다른 깊이와 분위기를 형성한다.
산과 바다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
전시장에는 산과 바다를 비롯한 다양한 풍경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걸려 있다. ‘바람이 멈춘 날’,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 ‘blue ocean 숨’ 등은 자연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대표작 ‘바다를 바라보는 방법’은 바다를 하나의 고정된 시점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여러 시선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표현한 작품으로, 익숙한 자연 풍경을 다양한 관점으로 마주하게 한다.
스승인 운산 조평휘 화백을 기리는 ‘오마주 조평휘’도 전시된다. 이 작품에는 웅장한 산세와 역동적인 붓놀림이 담겼다. 산의 크기와 흐름, 붓의 움직임이 화면 안에서 맞물리며 강한 인상을 전한다.
정용민의 작품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뿐 아니라 가까운 일상에서 출발한 장면도 등장한다. 산과 바다 같은 넓은 자연에서 사람과 꽃, 가족의 기억으로 시선이 이어지며 전시의 이야기가 확장된다.
꽃과 사람에게서 발견한 기억
봄날의 꽃을 표현한 ‘걸음마다 피는 꽃’은 걸음과 꽃이 이어지는 장면을 담는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서는 꽃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화면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엄마의 바다’는 작가의 어머니가 일하던 밭을 바다에 비유한 작품이다. 밭이라는 일상의 공간을 바다로 바라본 기억과 감정이 작품의 바탕을 이룬다. ‘하루예찬’ 역시 평범한 하루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긴 사례다.
작품마다 그림과 함께 짧은 시처럼 읽히는 글이 붙어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먼저 그림의 색과 형태를 살펴본 뒤 함께 놓인 글을 읽으면 작품에 담긴 기억과 이야기에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림과 글은 각각 독립된 표현이면서도 한 작품의 정서를 함께 전달한다.
정용민 작가는 관객이 그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을 정해진 하나의 해석으로 읽기보다 색채와 풍경,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저마다의 감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성심당거리 뒤편에서 만나는 전시
전시가 열리는 문화공간주차는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에 있으며 성심당거리 바로 뒤편에 자리한다. 대전 중구 원도심의 먹거리 공간과 문화예술 공간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위치다.
전시 작품 가운데에는 성심당을 그린 그림도 포함돼 있다. 대흥동과 성심당거리라는 실제 장소가 작품 속 풍경으로 이어지면서 전시가 열리는 공간과 그림의 배경이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문화공간주차 내부에는 여러 농도의 초록빛을 품은 작품들이 배치돼 있다. 관람객은 순지 위에 반복된 사람의 움직임과 그 위로 겹쳐진 산, 바다, 꽃, 인물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전반에는 초록색 특유의 차분함과 생동감이 함께 감돈다.
대전 중구 원도심은 골목을 따라 개성 있는 문화예술 공간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번 개인전은 대흥동 골목의 문화공간에서 한국화의 전통 재료와 현대적인 표현, 일상의 기억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전시 정보
| 전시명 | 정용민 제8회 개인전 ‘메론풍경’ |
|---|---|
| 전시 기간 | 2026년 10월 29일 목요일부터 11월 4일 수요일까지 |
| 관람 시간 |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
| 전시 장소 | 문화공간주차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로157번길 40-12 |
| 관람료 | 무료 |
전시는 정용민 작가가 일상에서 발견한 풍경과 기억을 여러 초록빛으로 풀어낸 자리다. 멜론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멜론의 과육과 껍질에서 떠올린 색채를 산과 바다, 꽃과 사람에게 연결했다는 점이 전시 제목과 작품을 잇는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