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세운 사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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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세운 사람의 시간

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작가전

대전시립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작가전 《임송자》가 열리고 있다. 이동훈미술상은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의 한 축을 이루고 지역 미술 발전에 기여한 고 이동훈 화백의 예술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됐다.

2026년 7월부터 9월까지 특별상 수상자인 김은희와 정의철의 전시가 열린 데 이어, 이번에는 본상을 받은 조각가 임송자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시는 한 사람을 관찰하고 재료를 손으로 다루어 조각으로 세운 뒤, 여러 인물과 주변 공간으로 시선을 넓혀가는 작가의 긴 작업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바라보다 만지다 세우다

이번 전시는 바라보다, 만지다, 세우다라는 세 가지 움직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사람을 바라보는 관찰에서 시작해 작가의 손과 재료를 거쳐 하나의 조각이 탄생하고, 완성된 여러 몸이 전시 공간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이루는 흐름을 따라간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단순히 인체의 생김새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얼굴의 골격과 표정, 고개가 향하는 방향, 몸의 기울기와 인물 사이의 거리까지 조형 요소로 다뤄진다. 관람객은 한 작품의 세부를 살피는 동시에 여러 조각이 함께 만들어내는 장면과 공간을 순서대로 마주하게 된다.

인체를 향한 한결같은 시선

1940년에 태어난 임송자는 1970년대 유학 시절부터 인체를 소재로 조각 작업을 이어온 원로작가다. 사람의 얼굴과 몸이라는 전통적인 조각의 대상을 토대로 자신만의 구상조각을 발전시켰다. 가족과 친구, 동료, 제자처럼 가까이에서 만난 사람들의 특징을 관찰한 데서 출발해 손과 몸의 형태, 인물 사이의 관계, 작품을 둘러싼 공간으로 작업 범위를 확장했다.

오랜 작업 기간에도 임송자가 일관되게 바라본 대상은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얼굴과 몸을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은 조각의 형태를 만드는 기반이 됐고, 개별 인물의 차이는 작품 속 표정과 자세, 방향을 통해 드러났다.

1970년대에 다진 조형적 기반

임송자는 1970년대 말 인체의 구조와 균형을 토대로 인물을 형상화하는 조형적 기반을 구축했다. 여러 사람의 머리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연결하면서도 얼굴마다 다른 골격과 표정, 고개의 방향을 세밀하게 표현해 각 인물의 특징을 구별했다.

이 같은 조형 방식은 여러 두상을 함께 구성한 작품뿐 아니라 흉상에서도 이어졌다. 작품들은 하나의 큰 형태 안에서 인물들의 공통점과 차이를 함께 드러낸다. 가까이에서는 얼굴마다 달라지는 작은 표현이 눈에 들어오고, 거리를 두고 보면 여러 인물이 연결된 전체 구조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선과 굴곡으로 떠오른 얼굴

1980년대 초 작품에서는 얼굴의 형태가 얕게 드러나는 낮은 부조가 등장한다. 눈과 코, 입은 표면 위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반면 얼굴의 전체 윤곽과 머리카락에는 긁거나 그은 듯한 선이 남아 있다.

입체적인 초상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몇 개의 선과 굴곡으로 얼굴을 다시 그려낸 듯한 모습이 특징이다. 얼굴의 모든 부분을 뚜렷하게 설명하기보다 제한된 높낮이와 선을 활용해 인물의 존재를 드러낸다. 조각의 부피와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선이 한 화면 안에서 맞물린다.

흙에 남은 손의 움직임

1990년대 테라코타 작품에서는 작가가 흙을 다룬 시간이 작품 표면에 직접 남아 있다. 얼굴과 몸에는 흙의 높낮이와 손으로 눌러 만든 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표면을 매끈하게 정리하기보다 흙을 덧붙이고 밀고 누르는 과정을 통해 얼굴의 골격과 몸의 부피를 형성했다.

작품에 남은 손자국과 흙의 요철은 제거해야 할 흔적이 아니라 형상이 만들어진 시간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조각의 일부다. 손의 움직임과 감각이 천연 재료인 흙과 결합하면서 인물의 얼굴과 몸이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관람자는 굴곡진 표면을 따라가며 재료가 쌓이고 눌린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여러 몸과 빈 공간의 구성

전시실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중앙 공간에서는 전신상과 군상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선보인 이 작품들은 개별 인물의 자세뿐 아니라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 그 사이에 형성된 빈 공간을 중요하게 다룬다.

한쪽 다리에 실린 무게와 몸이 기울어진 방향, 서로 다르게 향하는 시선은 각 인물을 구별한다. 동시에 이러한 차이는 여러 인물이 함께 놓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 서로 떨어져 선 인물들은 같은 장소에 잠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장면처럼 배치된다.

몸의 방향과 높이, 인물 사이에 생긴 간격도 하나의 조각적 구성으로 작용한다. 한 사람의 몸은 다른 몸과의 거리 속에서 새롭게 보이고, 조각 사이의 빈 공간도 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임송자의 인물 조각은 독립된 하나의 형상에서 나아가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무는 장면과 그 주변 공간까지 형성한다.

사람을 세워온 조각의 여정

이번 전시는 임송자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손과 재료로 만지며, 하나의 존재로 세워온 시간을 살펴보도록 구성됐다. 인체의 구조와 균형을 탐구한 1970년대 작업, 낮은 부조와 선이 어우러진 1980년대 초 작품, 흙을 다룬 흔적이 선명한 1990년대 테라코타, 인물 사이의 관계와 공간을 강조한 1990년대와 2000년대 전신상 및 군상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임송자는 서구 인물 조각의 전통을 이어받아 한국 조각계에서 구상조각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사람을 중심에 둔 그의 조각이 얼굴과 몸에서 출발해 관계와 공간으로 확장된 과정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 관람 정보

전시명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작가전 《임송자》
전시 기간2026년 10월 1일 목요일부터 11월 22일 일요일까지
관람 시간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일매주 월요일
전시장대전시립미술관 1층 제5전시실
시설 주소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5 둔산대공원

전시는 2026년 11월 22일까지 계속된다. 관람객은 전시실의 작품 배치에 따라 인물의 얼굴과 몸, 손으로 빚은 표면, 여러 조각 사이의 간격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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