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피운 낯선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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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피운 낯선 시선

비어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 사진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 갤러리메르헨에서 사진전 《결핍으로 달콤하게 멜랑콜리아》가 열린다. 전시는 결핍과 상실을 단순히 메워야 할 빈자리로 규정하지 않고,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감각하고 자신의 존재를 깊이 바라보게 하는 조건으로 다룬다.

이정희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블룸즈버리 현대사진작가회 회원들의 사진 작업을 중심으로 관계와 시선, 상실 이후의 감정을 풀어낸다. 전시 제목은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서간집에서 착안했다. 부족함 때문에 생겨난 감정과 시선이 어떻게 또 다른 발견으로 이어지는지를 여러 사진 언어로 보여준다.

전시가 건네는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사라진 자리는 정말 부족함으로만 남는가, 아니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가.

겹쳐진 눈과 관계의 양가성

전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의 눈을 분절하고 중첩한 사진이 시선을 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여러 눈의 이미지가 겹치고, 그 위로 붉은 선이 교차한다. 작품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에서는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양가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도 끊임없이 관찰되고 있다고 느낀다. 작품 속 겹친 눈은 이러한 관계의 긴장을 한 장면에 압축한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화면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남는다.

전시의 기획 방향도 이처럼 결핍을 한 가지 의미로 고정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사라진 뒤 생긴 공백은 상실의 흔적이지만, 그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이 깨어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채우지 못한 상태 자체가 존재와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이야기다.

일상에서 낯선 형상을 찾는 김성순

김성순 작가는 바위와 대리석 기둥, 나무 표피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사진에 담았다. 익숙한 소재이지만 화면에서는 산맥이나 낯선 풍경처럼 보이는 형상이 나타난다. 무엇을 촬영했는지보다 그 표면에서 어떤 모습이 발견되는지가 작품의 중요한 지점이 된다.

작품 대부분은 무거운 카메라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촬영됐다. 김 작가는 어깨 상태로 인해 무거운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흥미로운 이미지를 찾아 사진으로 남겼다. 신체적 제약에서 비롯된 촬영 방식의 변화가 가까운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작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형상에 특정한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관람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을 즐기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게는 산맥으로 보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장소나 사물처럼 다가올 수 있다.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설명에서 끝나지 않고, 관람자의 경험과 상상에 따라 다시 만들어진다. 관람객이 사진 앞에서 잠시 멈추고 화면의 무늬와 형태를 살펴보는 순간, 평범한 사물의 표면은 새로운 풍경으로 전환된다.

사진은 김 작가에게 일상의 감정을 환기하는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주변의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감정도 자연스럽게 전환된다고 설명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간다는 태도는 사진 촬영이 반드시 특별한 작품 제작만을 위한 행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색을 덜어 감정을 남긴 이오상

이오상 작가는 김성순 작가와 다른 방식으로 결핍을 표현한다. 기존에는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채를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색을 덜어낸 흑백 화면과 거친 질감을 강조했다.

색채와 세부 표현을 의도적으로 줄인 화면에는 빛의 부재와 황량한 분위기가 나타난다. 선명하고 화려한 요소가 사라진 자리에는 감정의 흔적이 더욱 뚜렷하게 남는다. 무엇을 더하는 대신 덜어내는 방식으로 내면의 정서를 드러낸 작업이다.

사진을 출력한 뒤 한지를 활용해 직접 배접한 점도 작품의 특징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표면보다 손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과 질감이 사진에 새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인쇄된 사진과 한지의 물성이 겹치며 화면에는 매끄러운 사진 인화와는 다른 거친 감각이 형성된다.

이 작가는 사진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가능한 한 아름다운 대상을 촬영하겠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밝힌다. 세상에는 이미 아름다운 것이 충분히 많으며 어둡고 지저분한 면만을 굳이 부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사진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표현하는 일이자 은퇴 이후의 시간을 즐겁게 채우는 예술 활동이다. 촬영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보정하는 과정까지 작업 전반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난 결핍

두 작가의 작업 방식은 뚜렷하게 구분된다. 김성순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한 형상의 의미를 열어두고 관람자가 자유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오상 작가는 색과 세부 표현을 덜어내고 흑백의 거친 화면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드러낸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업은 사진을 통해 자신만의 시선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맞닿는다. 주변의 사소한 표면을 낯선 풍경으로 전환하거나, 풍부한 색을 지워 남겨진 감정을 강조하는 과정 모두 익숙한 세계를 다시 보는 방법이다.

《결핍으로 달콤하게 멜랑콜리아》는 결핍을 반드시 제거하거나 채워야 하는 상태로만 보지 않는다. 비어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고, 부족함 속에서도 삶과 관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생길 수 있음을 제안한다.

전시 공간에는 관람객이 작품의 형태와 질감을 비교하며 천천히 이동할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된다. 겹쳐진 눈, 사물의 표면에서 발견한 형상, 색이 사라진 흑백 화면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붙든다. 작품들은 익숙한 것을 곧바로 단정하지 않고 한 번 더 바라보도록 이끈다.

때로는 무언가를 더 많이 채우는 것보다 덜어낸 뒤 남은 것을 살피는 일이 더 많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의 풍경과 사물, 사람의 시선을 천천히 돌아보게 하는 자리다.

전시 일정과 장소

전시명결핍으로 달콤하게 멜랑콜리아
기간2026년 11월 4일 수요일부터 11월 10일 화요일까지
관람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막 행사2026년 11월 7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갤러리메르헨
소재지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대로556번길 87, 도룡동 대덕초등학교 앞
주차 안내갤러리메르헨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 3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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